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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의 시간>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은 애달프다.

제목과 포스터가 무척이나 강렬하게 다가오는 <도살장의 시간>을 보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다녀왔습니다. <레이디 맥베스>와 <서안화차> 같은 독특한 작품을 통해 상도 많이 수상한 연출가 한태숙님의 신작에 박지일님이 출연한다는 소식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었죠. 그런데.... 포스터가 영.... -..-;;;

한 때는 활기가 넘치던 극장이었던 이곳은 불의의 사고로 폐쇄된 후 도살장이 되었으나 지금은 다시 소극장과 연극 자료실로 새로이 태어났습니다. 오늘은 개관하는 첫날이라서 준비하느라 분주하군요. 도살장에서 꽤 오랫동안 일했다는 천변은 연극자료실에 찾아와 홀로 자료를 정리하느라 바쁜 사서에게 말을 건네죠. 낯선 이를 경계하며 귀찮아하던 사서는 그의 부탁도 받아주며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그렇게 천변의 회상으로 과거와 지금, 현실과 환상을 오고가며 이야기는 진행되죠. 도대체.... 그는 이곳에 왜 온 걸까요?

주로 만나왔던 높이의 무대가 아닌 바닥을 걷어내고 지하부터 삼단 구조로 이루어진 세트인데~ 1층은 제목에도 등장하는 도살장, 2층은 새로 개관하는 연극자료실, 3층은 자료 보관 창고로 구성되어 있죠. 소극장에 이런 식으로 설치할 수 있는 공연장이 몇 군데 안 될듯하니 자유소극장을 잘 활용했고 조명 덕분에 공간이 깊이 있어졌습니다. 다만... 도살장은 내려다봐야 해서 지정석에 앉은 관객들도 뒤쪽에선 시야 확보가 쉽지 않은 단점이 있더군요. 자유석인 2층이 공연 보기에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도살장 안쪽까지 보일지가 의문이네요.


천변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로부터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이란 참~ 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인해 그토록 사랑했던 무대를 떠나 오랜 세월을 방황해야 했지만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기엔 그의 손에 너무 많은 피가 묻어버렸거든요. 그는 희생양을 통해 열정과 순수함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고 싶었겠지만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타인을 희생해도 자신이 깨끗해질 수는 없는 법이죠. 그건... 그저 자신만 더 초라하게 만드는 광기일 뿐입니다.

<도살장의 시간>을 보고나서 ‘연극이 가졌던 순수성이 빛났던 시절은 이제 과거의 기억일 뿐인가?’라는 생각에 씁쓸했어요. 대중성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그동안 너무 시류에 맞춰 변해가는 공연들을 보면서 들었던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초반에 사서가 읊던 희곡 제목들이 뜻하던 바도 그것이었나 봅니다. 그런 측면 때문에 박지일님이 분한 천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더군요.


천변과 천변의 기억, 천변의 내면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역할을 인지하고 본다면 공연이 어렵지 않아요. 천변의 내면을 연기한 정영두님은 안무가로 유명한 분이라던데~ 극 후반에 천변과 내면이 혼재되던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사서를 맡은 서영화님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를 때 어찌나 실감이 나던지 보던 제가 움찔했을 정도였죠. 전반적으로 애매한 구석이 있는데... 차라리 파국을 좀 더 처절하게 끌어갔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시간을 내서 원작인 『도살장의 책』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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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의 시간


기간 : 2009/10/27~2009/11/08  ( 월,화,목,금 8:00/수 4:00/토 4:00, 7:00/일 4:00  )

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가격 : 지정석 30,000/자유석 20,000 

문의 : 극단 물리

원작 : 이승우의 단편 『도살장의 책』

개작 : 김지현

연출 : 한태숙

출연 : 박지일, 서영화, 유준원, 이영숙, 정영두, 김원주, 권겸민, 류혜린

by 별의목소리 | 2009/11/07 12:43 | 문화 공감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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